“용산은 귀한 자산…역사·자연 아우른 스마트 K공원 만들것”
‘공원 나라, 정원 도시’ 프로젝트
최근 몇 년간 지방 소도시 폐건물 사진을 찍으러 다닌 한 미술가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동네 하나가 거의 비어 있는 곳들이 갈수록 늘어나서다. 저출생 인구고령화와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방소멸은 한국이 당면한 가장 큰 사회문제 중 하나다. 이에 대해 권영걸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신임 위원장은 그 해결책 중 하나로 “읍 단위를 양질의 교육·의료를 갖춘 ‘스마트그린 압축도시’로 키워 면·리 단위의 인구를 흡수하면서, 농업은 스마트팜(정보통신기술로 원격·자동 관리 가능한 농장)으로 고도화하고, 기존의 면·리 지역 건물들은 환경생태 복원, 신재생에너지 생산, 도시민 휴양 등 다양한 용도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축 비전 제시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기구인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이하 국건위)는 지방소멸처럼 국가의 여러 부처와 기관이 함께 해결해야 하는 큰 문제들에 대해 건축공간적 해법과 비전을 제시하는 곳이다. 예컨대, 앞서의 ‘스마트그린 압축도시’와 관련해서, 국건위는 관계 정부부처와 협의해 정책을 검토하고, 모형을 구축하여 시범도시를 조성하는 방법을 지자체들에 제공할 수 있다고 권 위원장은 설명했다. 국건위는 2008년 설립됐으며, 권 위원장이 이끄는 제7기 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출범했다. 권 위원장은 서울대 미대 학장,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등을 거쳐온 도시디자인 전문가다.
제7기 국건위의 슬로건은 ‘공원 같은 나라, 정원 같은 도시’다. 산업화 시대에 자동차 도로를 중심으로 조성된 회색 콘크리트 도시 대신, 정보통신기술(ICT)과 목재 같은 탄소 흡수 재료, 미세먼지를 흡수하는 신소재를 적극 활용해 녹색이며 보행친화적인 도시 건축의 틀을 잡아 “K-도시, K-건축, K-공원으로 미래도시공간의 선도국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 제7기 국건위의 포부다. 중앙SUNDAY가 권 위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새로운 ‘K-공원’ 중 하나가 용산국가공원이 될 것인데, 이 공원과 그 일대의 개발은 수도 서울 도시건축의 큰 변화이고, 따라서 국건위에서 관여할 것으로 알고 있다. 국건위 위원장으로 부임하기 전에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으로 일할 때도 용산국가공원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문가로서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용산은, 현대 정치사가 특유의 자연유산을 낳은 비무장지대(DMZ)와 함께, 역사의 아픔이 오늘의 선물이 된 귀한 인문지리적 자산이다. 따라서 용산국가공원은, 오랫동안 논의를 거듭해 왔지만, 기본적으로 자연생태공원과 역사문화공원의 성격이 복합된 방향성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용산을 에워싸고 있는 지역과 한강에 잇닿아 있는 지역은, 공원의 ‘확장성’과 한강과의 ‘연결성’, 공원과 주변 지역 간의 경제·문화·환경적 ‘융복합화’를 통해, 용산국가공원이 인근 지역을 미래형 스마트 생태도시로 발전시켜 나가는 ‘작동성’을 보여줄 것이다.
지난 170년간 세계의 많은 도심 공원들이 뉴욕 센트럴파크를 모본으로 삼았다면, 용산국가공원은 새로운 공원으로서 향후 세계의 공원들이 모본으로 삼는 공원이 될 수 있다. 그 새로움 중 하나는 ICT 강국인 한국이 특히 잘할 수 있는 스마트 공원이다. 공원은 수목이 무성해서 밤에는 자칫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데, 구역을 나누어 드론 정찰을 하는 등 빈틈없이 관리함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치안이 잘 확보된, 밤에도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공원이 될 수 있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문제는 저출생과 더불어 한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들에 속한다. 국건위는 도시 디자인과 건축을 통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가?
건축 재료를 콘크리트에서 목재로 전환하는 등 국가건축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무는 탄소를 흡수하여 그대로 저장하는 부재이기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목재에 대한 편견(벌목으로 인한 환경파괴 등)이 존재하는데, 오히려 산림은 주기적인 간벌(솎아베기)을 필요로 한다. 오래된 나무는 탄소 저장이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목조건축기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어서, 이제 20층에 가까운 높이의 건물도 목재로 가능하며, 서구에서는 새로운 친환경 건축 부재로 부상하고 있다. 외장재·치장재로만 쓰는 것도 탄소 흡수 효과가 있다.
국건위는 도시도 자연처럼 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생명도시가 되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생물학·재료학·나노공학·건축학 등 다양한 분야와 융·복합적 연구를 통해 새로운 친환경적 건축 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적용할 수 있는 건축 모형이 나와야 한다. 관련하여 현재 학술적으로 인공 광합성을 하거나 미세먼지를 흡수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하는 연구자들이 있는데, 국건위는 이들과 연계해 한국형 생명도시, 생태건축 개발을 지원할 것이다.
빌바오 성공은 미술관 유치 전 계획 덕분
요즘 예술을 통해서 도시 브랜딩을 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한 근시안적인 움직임이 많아 예술계에서는 비판도 많다.
예술에 대한 몰이해뿐만 아니라 도시에 대한 몰이해도 문제다. 특히 공공미술의 경우, 도시환경적 맥락을 무시한 경우가 많다. 지난 30년간 국민의 문화향유권 증대를 위해 지자체들이 다투어 문화 인프라를 확충해 나갔지만, 공공 주도로 만들어진 수많은 시설들이 주민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술관·박물관·비엔날레 같은 문화플랫폼들이 해당 지역의 정체성, 도시의 사회구조와 잘 맞물려 운영되지 못한 탓이다. 이를 위해 ‘도시문화·건축정책 가이드라인’이 제정되어 운용되어야 하겠다.
문화시설은 건립되는 지역에 온전히 융합되어야 한다. 유명한 미술관이 유치되어도 그 지역 주민들의 삶과 유리될 때 의미를 상실한다. 흔히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빌바오라는 도시를 살렸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미술관 하나가 그 도시를 살려낸 것이 아니라, 빌바오 시가 도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준비를 꾸준히 체계적으로 한 뒤에 미술관이 들어와서 기폭제 효과가 난 것이다.
문소영 문화전문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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