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신냉전과 다극화’로 새로운 기회 맞아
지난 7일 오전 광화문 인근 한 카페와 야외에서 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와 올해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 조천현]
손꼽히는 국제관계 전문가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는 미중 패권 경쟁이 잠정 봉합된 지금 시점이 중국이 그동안 미뤄놓은 한국을 손볼 수 있는 때라고 우려를 표했다.
지난 연말 발표된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인태전략) 자체가 “일본이 제안하고 미국이 이어받은 인도‧태평양 전략이라고 하는 반중전선에 편승하는 이런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중국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조성렬 전 총영사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작년 10월 한 달 빼고는 계속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며 “이것은 어떤 중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특히 “중국과 미국의 대립은 작년 11월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서 일시 봉합했다”며 “휴지기를 이용해서 중국이 본격적으로 일본과 한국에 대한 손보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고 “2023년도가 한중 관계에 굉장히 중요한 시기가 되지 않을까 위험한 시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한국이 칩4(Chip4)에 가입을 해서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에 제동을 걸 경우 거꾸로 중국으로서는 희토류나 이런 부분들에 대한 한국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고 예시했다.
나아가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전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하다’는 표현을 넣어 한국의 안보와 직접 연결시켰다”며 “이것은 만약에 대만 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한국이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중요한 시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아울러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북한이 미국과 일본의 전력이 대만 해협에 집중되는 틈을 타서 한반도에서의 어떤 무력 도발을 기도할 가능성과 다른 면으로 본다면 중국이 대만 침공을 위해서 오히려 먼저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하고 여기에 주한미군과 일본자위대의 발목을 잡은 뒤에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계했다.
조 전 총영사는 윤석열 정부의 인태전략은 노태우 정부시기부터 추진한 북방외교의 주 대상인 ‘유라시아’가 빠져있고, 아세안과의 관계에서도 경제협력을 중시한 ‘아세안의 관점’이 아니라 ‘해상 교통로의 안전’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대외정책 기조에 대해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얘기한 ‘신냉전과 다극화’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북한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며 “북한으로선 신뢰할 수 없는 한국, 미국, 일본보다 중국, 러시아나 유라시아 경제연합 쪽에서 활로를 찾으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현재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 경제연합’이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지난해 연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보고’에 나섰고 노동신문은 “국제관계구도가 《신랭전》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는데 맞게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가 국위제고, 국권수호, 국익사수를 위하여,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철저히 견지해야 할 대외사업원칙이 강조되였다”고 1월 1일자로 보도한 바 있다.
조 전 총영사는 “북한이 저위력의 핵무력을 갖춘 현 단계에서 증강된 재래식 전력으로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되, 북한이 고위력의 핵무기를 개발해 실전 배치하기 이전에 비핵화 협상을 재개해서 이런 상황 악화를 막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대화 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핵 전략자산들의 한반도 배치라든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거나 “윤석열 정부가 과도하게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들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거나 “중국의 건설적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조 전 총영사는 “일방적인 군사 훈련의 축소라기보다는 북한에 대한 조건부, 다시 말하면 북한이 대화에 응한다든지 이럴 경우 어느 정도 충분히 한미군사훈련에 대해서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이런 메시지를 전달해줘야 북한도 어느 정도 도발적인 자세를 완화시킬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 정부가 뭔가 남북 간의 대화 채널을 복원하는 데 상당한 힘을 기울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1년 6월에 주오사카 총영사로 부임해 2022년 9월까지 재직한 그는 “지금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바뀌었다”며 “1,20대뿐만 아니라 3,40대까지 올라간다고 보는데 이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굉장히 강하게 갖고 있다”고 전했다.
한일 정부간 막바지 협상이 한창인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서는 “핵심적인 내용은 일본 정부의 사과와 실제 전범 기업들의 구체적인 배상이 이루어지느냐 하는 부분”이라며 “지금은 우리 정부가 촉구하고 있는 ‘성의있는 호응조치’에 대해서 일본이 어느 정도 화답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나아가 지난달 16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 결과에 대해 “거의 일본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것처럼 하다가 뜻밖에 우리의 요구를 분명하게 하고 그걸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외교부가 국내의 강한 반대여론을 의식한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며 “정치인으로서 가장 큰 책임을 지는 건 박진 장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진 장관도 고민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7일 오전 광화문 인근 한 카페와 야외에서 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한류와 혐한, 민단과 총련의 공존
국제관계 전문가인 조성렬 박사는 문재인 정부 시기 오사카 총영사로 발탁됐다. [사진 - 조천현]
□ 통일뉴스 : 오사카 총영사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했나?
■ 조성렬 전 총영사 : 2021년 6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있었다. 약 1년 한 4개월 정도 있었다.
□ 주로 연구직에 있다가 처음으로 공직, 그것도 공관장을 맡았는데, 해보니까 어땠나?
■ 그동안에 정부 쪽 사람들하고 일은 여러 차례 같이 했지만 주로 정책 자문 쪽이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실무책임을 맡아서 일하게 된 거다. 특히 재외공관이 외교부 소속이기는 하지만 외교부뿐만 아니라 문화관광체육부, 교육부, 경찰, 국가정보원, 대법원, 선거관리위원회 등 여러 부처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보니까 그들과 일을 같이 하면서 각 부처의 특징을 파악하고 업무조율에 대해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 오사카라는 지역이 우리와 역사적으로 매우 관계가 깊은 곳으로 안다. 일본 안에 있는 동포들의 실상, 흐름은 어떠했나?
■ 오사카는 통상적으로 얘기할 때 재일동포의 고향, 재일동포의 수도라고 한다. 그에 걸맞게 ‘올드커머’(Oldcomer) 재일동포들이 제일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재일동포를 보통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에 온 사람들을 ‘뉴커머’(Newcomer), 그 이전에 온 사람들을 ‘올드커머’라고 부른다.
오사카를 재일동포의 수도라고도 얘기하는데, 이분들은 이미 4세대에서 5대까지 넘어가다 보니까 일부는 상당 부분 일본에 동화된 분들도 많고 또 일부는 여전히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많다. 특히 한국이 국력이 신장되면서 재일동포들이 과거와 달리 자신이 한국계라고 하는 것을 밝히면서 떳떳하게 사는 이런 모습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전반적으로 보면 재일동포들이 성공한 사람 위주로 한국에서 소개가 많이 돼 있지만 사실은 한국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또 일본 사회 내에서도 하층민으로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동안에 우리 정부에서 이런 소외계층 재일동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있는 동안에는 이런 재일동포 소외층들을 위해서 뭔가 의미 있는 사업을 준비를 쭉 해왔는데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마무리 못 지은 것이 좀 아쉽다.
□ 총영사 재직 중에 우토로 마을 평화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한 것을 봤다.
■ 내가 있을 때 우토로 평화기념관 준공식이 있었고, 그 이전에 입주한 1차 시영주택에 이어 2차 시영주택의 착공식을 가졌다.
그리고 또 하나 의미 있는 것은 일본 내에 보통 세 개의 코리아타운이 있다고 얘기하는데, 하나가 도쿄에 있는 신오쿠보와 교도의 히가시쿠조, 그리고 오사카 이쿠노에 있는 코리아타운이다.
그동안에는 한국사람들이 모여 장사하는 거리라는 의미였지만, 작년 4월에 공식적으로 ‘오사카 코리아타운’이 사단법인으로 발족했다. 오사카시가 인정하는 법적 기구로서 ‘오사카 코리아타운’이 정식 발족함으로써 재일동포의 법적 지위 보장 면에서 큰 의미가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때문에 일본 오사카에 관광객들이 오지 않았는데 코리아타운이 오사카의 3대 명소 중 하나로까지 불릴 정도로 굉장히 많은 일본인들이 한류 영향 때문에 코리아타운을 찾아왔다.
□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무래도 이제 한류가 등장을 하는데, 한일 관계를 보면 쭉 오랜 역사가 있는데 그중에서 최근에는 한류가 상당히 특징적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한류가 어떠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 지금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바뀌었다. 1,20대뿐만 아니라 3,40대까지 올라간다고 보는데 이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굉장히 강하게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코로나 기간에도 한국에 오지 못하면서 한국 드라마나 한국 음악, 한국의 여러 문학 작품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사카, 교토, 나라에 설치돼 있는 문화원이나 교육원에 한국어를 배운다든지 한국 문화를 익히기 위해서 많이 찾아왔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우리가 비유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혐한단체로 알려지는 ‘재특회’다. 재특회의 정식 명칭은 ‘재일 특권을 반대하는 일본인 모임’인데 그 이름에서 알리다시피 단순히 한국을 폄하하는 의미를 넘어 한국이 이미 잘 살게 됐는데 왜 재일동포들한테, 한국인한테 특혜를 주느냐하는 문제제기다. 재특회라는 이름은 한편으로는 한국인에 대한 삐뚤어진 차별의식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한국의 높아진 위상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 그렇지만 예를 들어서 큰 서점들에 ‘혐한 코너’가 있다고 하던데, 지금 분위기는 어떤지?
■ 오사카에 있는 대형서점에 여러 차례 가봤는데, 거기엔 혐한 서적도 상당히 많고 혐중 서적도 굉장히 많다. 일본인들은 보통 자기 속내를 잘 안 드러내는 특성이 있다 보니까 한국 사람을 만날 때는 상당히 부드럽게 대하면서도 속으로는 혐한 서적들을 즐겨 탐독하는 것 같다. 일부 일본인들의 정서에 편승해 혐한 서적들이 판치고 있고 또 상당한 독자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이중적인 것 같다. 한류를 좋아하고 부러워하면서도 혐한 정서를 갖는다는 게.
■ 약간 세대 차이가 있는데, 특히 5,60대 정도 되는 중년 남성들의 경우는 혐한 감정이 상당히 높다. 이 사람들은 과거에 한국이 식민지 국가였고 일본보다 훨씬 못산다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한국이 바짝 쫓아오고 일부 앞서가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욘사마’로 알려진 [겨울 연가]를 비롯해서 사실 한류의 독자들은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7,80%가 여성이다 보니까 반대로 일본의 중년 남성들은 여기에 반발하는 모습을 띠고 있고 이런 부분들이 재특회나 혐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중추라고 생각할 수 있다.
□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세대차가 느껴지는 것 같다.
■ 일본에 있는 기존의 댄스 교습소가 K팝 커버댄스 교습소들로 상당 부분 바뀌었다. 그리고 교육원에 한글 배우러 오는 여성들이 많고, 중년층들도 한글을 배우기 위해 많이 찾고 있다.
□ 총영사관 활동이 예전에 비하면 조건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 많이 좋아졌다. 기본적으로 위상이 높다. 현지에 있는 공관장 중에서는 가장 톱이다. 일본 전체의 외국인 수로 보면 중국이 제일 많지만 대부분 도쿄 쪽에 몰려 있고 특별영주권을 가진 재일동포의 수가 제일 많은 곳은 오사카 지역의 한국이다. 그러다 보니까 오사카 간사이 지역에서는 한국 총영사관이 위상도 높고 또 직원들도 제일 많다.
□ 재일동포 하면 조선적 또는 총련계가 중요한데, 오사카 지역 상황은 어떤가?
■ 실제로 총련계 활동이 제일 활발한 데가 역시 오사카 지역이다. 지금은 크게 위축이 돼 있다. 특히 재정적으로 어렵다 보니까. 조선학교도 하나둘씩 없어지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조선학교 매각대금들이 다른 조선학교 발전을 위해서 쓰여지지 못하고 총련의 부채탕감이나 교사들의 밀린 월급을 주고나면 다 없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일본사회의 저출산이 일본인뿐만 아니라 재일동포들에도 만연돼 있다. 조선학교만 그런 게 아니라 일본인 학교도 학생수가 굉장히 줄어들고 있다.
□ 요즘 총련과 민단 내지는 한국계와 갈등은 어느 정도인가?
■ 실제로 드러나는 갈등은 없는 것 같다. 나도 특별히 총련 쪽하고 공식 접촉은 하지는 않지만 공동행사나 추념식이나 이런 걸 하면 참석한다. 4.3추도식도 있었고, 우토로 평화기념관 준공식, 우키시마호 침몰 위령제의 경우도 우리 총영사관과 총련계가 같이 행사에 참석했다. 공동주최는 아니고, 주최기관이 따로 있고 거기에 참여하는 형식이다.
□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그래도 갈등이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다.
■ 드러난 갈등은 없고 다만 공동주최하는 행사는 없어졌다. 예전에 ‘원 코리아 페스티발’ 같은 게 있었는데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원 코리아 페스티발’은 민단계와 총련계가 같이 하는 행사인데 없어졌다. 기구는 남아 있는데 재정지원들이 안 되니까 실제로 행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 어쨌든 큰 경험을 했다.
■ 어떻게 보면 총련계 조선학교가 민족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을 사실이다. 재일동포 ‘올드커머’ 중에서 한국말 할 줄 아는 사람은 대체로 조선학교 출신자들이다. 현재 민단계에서 활동하는 조선학교 졸업생들도 꽤 된다.
□ 재일 조선학교는 굉장히 특이하다. 남의 나라에서 민족교육을 하는 사례이기 때문에.
■ 해외에 있는 우리 동포학교가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보통 한국학교가 있고, 일본에만 있는 민족학교가 있다. 민족학교는 현지에 있는 한국국적의 재일동포들이 만든 학교고, 한국학교는 한국입시를 지향하는, 그러니까 한국에 돌아가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자녀들 교육을 위해서 만든 학교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한국국적을 유지하는 민족학교가 있는 곳은 일본밖에 없다. 조선족 민족학교도 있긴 하지만 이들의 국적은 모두 중국국적이다.
강제동원 협상, “제2의 ‘위안부’합의 사태 일어날 수 있다”
오사카 총영사로서 4.3추모제에 참석했다. 이같은 행사와 추모제 등은 민단과 총련이 함께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사카 총영사관 홈페이지]
□ 지금 최대 현안은 크게 봐서 강제동원, 구체적으로 대법원 판결 집행 문제다. 전체적으로 일본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가?
■ 일본의 정치인들이나 외교관 또 언론인들과 이 문제에 대해서 토론한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일본 사람들은 자기네 경험과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의원내각제고 실제로 사법부가 반(半)독립적이다. 그러니까 통치행위로 이루어진 행정부의 국제합의에 위반되는 판결은 안 내린다는 거다.
일본에 있는 전직 외교관하고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은 이른바 통치행위 이론을 내걸면서 “정부가 어떤 통치행위로써 한 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법원이 거기에 반대되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느냐”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내가 “그것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의원내각제가 아니기 때문에 국회와 행정부가 서로 견제 기능도 있고 사법부도 완전히 독립돼 있다. 실제로 2012년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을 때 당시 박근혜 정부하고 양승태 대법원장하고 나름대로 이걸 뒤엎으려고 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발각돼서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사법농단 사태까지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경우는 사법부가 행정부의 뜻을 반영하지도 않지만 이처럼 행정부가 사법 판단에 개입하려고 할 경우 사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한국 정부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굉장히 이상하게 보인다. 마치 행정부가 사법 판단에 개입하라는 그런 모습으로 보이는데 이런 것은 그야말로 일본적인 사고다.
이런 설명을 했더니 “아, 다르군요” 하더라. 그런데 일본 사람들의 특징이 자기중심, 자기식 대로 생각하는 그리고 그것을 전체로 해석하는 이런 경향이 굉장히 강한 것 같다. 민족마다 특성도 있고 다 그런데 어쨌든 제국 경험이 있는 나라들이 대체로 그렇다. ‘미국 예외주의’처럼.
키신저는 ‘중국 예외주의’라는 말도 썼는데 중국도 다른 나라가 하는 건 아주 냉정하게 보지만 자기네가 하는 건 다 합리화시킨다. 일본도 그런 잔재가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자기네들이 하는 것에 대해서 적어도 식민지 피해국가들,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네 입장에서만 판단하려고 하는 그런 데 굉장히 젖어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 사람들은 ‘한국의 민주당은 반일, 국민의힘은 친일’ 이런 프레임으로 보고 있다. 내가 “그렇지 않다. 실제로 한일 관계가 최악에 이른 것은 사실은 이명박 정부 때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 방문하고 일왕이 사과해야 한다고 발언했고, 더 결정적인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9월에 반일‧반파쇼 전쟁승리 기념식장에서 천안문 망루에 올라간 부분이다. 오히려 진보 정부에서 보면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서 한일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인들이 일반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친일, 반일 프레임은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 시각으로, 그 잣대로 보기 때문에 사실 문재인 정부 때 한일 관계가 어려웠던 상당 부분은 일본인들의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 현안은 우리 정부가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집행을 연기해 주고 새로운 방안을 내놓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전망하나?
■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3~4월에 일본을 방문해서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그래서 일본을 먼저 가서 한일 정상회담을 한 이후에 미국을 국빈 방문해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구상인 것 같다.
그 배경을 보면 우선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 시기가 올해 여름 이전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 정부는 그 이전에 한일 정상회담을 가지려고 하는 것 같다. 만약에 오염수 방류가 일어났을 때 한국 내 반일 여론들이 고조될 수가 있기 때문에 이걸 피하려고 굉장히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다.
현재는 이른바 ‘중첩적 채무인수 방안’이라는 안을 가지고 지금 일본 측과 세부 조정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다. 이것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기금을 가지고 우리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돈을 대신 지급하는 것인데, 다만 일본 정부의 사과와 성의 표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일본이 아직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 피해자 법률대리인 측에서는 지원재단을 통해서 지급하려면 법적 채무자인 일본기업이 지원재단에게 대신 변제해달라는 의향서 내지는 채무 인계서 이런 걸 써줘야 하는데 그걸 과연 미쓰비시나 신일본제철이 쓸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배상 책임을 지운 판결을 인정한 것으로 될 테니까.
■ 핵심적인 내용은 일본 정부의 사과와 실제 전범 기업들의 구체적인 배상이 이루어지느냐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사실 그동안에 논의됐던 ‘대위변제 방안’은 강제동원피해자인 채권자가 동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무산됐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채무자가 그 방안에 의향서를 제출해야 되는데 채무자인 일본 전범기업이 동의를 해줘야 하는 문제다.
지원재단이 자신의 채무를 대신 변제해주는 건 일본으로선 고맙겠지만 그러한 사실에 동의를 안 하면 여전히 일본 전범기업들의 채무는 남아 있는 거다. 그래서 지금 일본 쪽에서 요구하는 것은 일본기업들이 의향서를 내지 않도록 해달라고 하는 부분이다. 그럴 경우에 대법원 판결과 배치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지금 일본의 우익 집단들의 싱크탱크에서는 일본 전범기업들의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방식이 이루어지면 윤석열 정부 하에서는 중첩적 채무인수 방안이 통용되겠지만 만약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결국은 다시 무효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나름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정부의 보장을 받아라’ 이렇게 요구를 하고 있다. 마치 지난 한일‘위안부’합의 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다’라고 하는 것처럼 이번에도 한국 정부가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더 이상 이 문제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약에 이렇게 되면 사실상 굉장히 굴욕적인 외교가 될 수 있고, 제2의 ‘위안부’합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 지금 양쪽 다 문제 같다. 우리 입장에서는 전법기업이 뭔가 써줘야 되는데 쓰느냐 문제가 있고, 일본 쪽은 설사 해결했다 한들 한국에 다른 정부가 들어서서 또 뒤집으면 하나마나한 일이 된다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 그런 거다. ‘위안부’합의도 처음에 그 자체에 대해서 문재인 정부에서 검토해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지만 결국은 문재인 정부도 한일‘위안부’합의에 대해서는 인정을 했다. 그러니까 일본 정부는 그런 걸 노리는 거다. 그러니까 설사 한국 국내적인 부담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지만 적어도 일본한테는 다시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고 하는 게 일본 측의 요구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우리의 경우는 새로운 ‘고노 담화’라든지 ‘무라야마 담화’, 기존에 있었던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나왔던 사죄 발언, 이런 내용들로 다시 한 번 사죄의 뜻을 표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 정부는 기존의 합의를 존중한다는 정도로 해서 그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도 이견이 있다.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그동안의 아베 정부가 사실상 무라야마 담화라든지 고노 담화를 무효화하는 성격의 내용들을 계속 발표했기 때문에 새로운 담화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 정부는 ‘기존 담화가 공식적으로 파기된 게 아니기 때문에 기존 담화를 계승한다’ 이런 정도로 하려고 하는 게 쟁점이라고 볼 수 있다.
□ 어쨌든 아직 디테일한 건 남아있지만 큰 틀에서는 상당히 접근했다고 볼 수 있겠다.
■ 그렇다. 지금은 우리 정부가 촉구하고 있는 ‘성의있는 호응조치’에 대해서 일본이 어느 정도 화답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
실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일정 정도의 돈을 내놔라. 또 하나는 전범기업들이 직접 내놔라. 일본의 경단련(일본경제단체연합)이 대신 지급하는 건 받을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이다.
반면에 일본은 내놓더라도 이것이 배상금 성격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왜냐하면 만약에 배상금 성격의 자금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는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2018년 10월에 있었던 대법원 판결 이행의 성격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어느 정도 성의를 표시하는 형식을 갖추고 싶어 하는 거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윤 정부가 동의한다면 이 정부 기간에는 통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법원 판결은 아직 이행된 게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중첩적 채무인수’ 방안에 따른 위로금 지급의 경우도 이번에 재판에 참여했던 30여 명에 대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번에 재판에 참여하지는 많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이 불공정성을 제기하면 또다시 소송이 제기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이번에 합의하더라도 일회적으로 끝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이번에 나온 판결은 사실 신일본제철하고 미쓰비시 두 군데에 관련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내용이다.
□ 외교부 출입하면서 보니까 국장급 협의에서는 이야기할 거 다 했고, 이견이 확인됐고, 결국 고위급에서 정치적 타결을 하고, 그러면서 결국 피해자들을 설득하는, 결국 정치적 합의와 피해자 설득 두 가지로 모아지는 것 같다. 그러면 정치적 합의라는 건 어느 정도는 일본측에 양보를 한다는 뜻 아니겠나?
■ 그럴 것이다. 합의 내용에서 우리가 양보하는 대신에 일본 기시다 정부가 어떤 새로운 담화 형태를 통해서 포괄적인 식민지배를 사과하는 게 필요한데, 현재 기시다 정권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 사실 그런 동력이 나올지는 의문이라고 볼 수 있다.
□ 만약에 그런 것도 없이 합의한다면 상당히 큰 반발이 예상되는데.
■ 큰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 관련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정치권이라든지 시민단체에서 크게 반발하고 있다.
□ 윤석열 정부는 5년짜리고 자기 치적을 내세우면 좋겠지만 박진 장관은 정치인이지 않나. 장관직 해봐야 1,2년일 거고 이런 데 서명을 하면 상당히 부담이 클 텐데.
■ 그래서 아마 외교부에 있는 관료들도 그렇고 박진 외교부 장관도 완전한 타결 형태로 해서 정상회담에 임하는 방법도 있지만 거꾸로 대통령의 결단에 맡기면서 공을 넘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든다.
마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 실무 선에서 어느 정도 합의를 끝내고 만나야 하는데 끝까지 합의가 안 되다 보니까 결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만나서 담판짓도록 했다, 하지만 이게 결렬되면서 북미 관계의 위기를 가져왔다. 그래서 어떤 형태든 간에 실무적으로 먼저 합의를 하고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 윤 대통령이 박진 외교부 장관을 교체하고 싶어 한다는 전언도 들리고 외교부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인다.
■ 지난달 16일 일본에서 국장급 협의를 하는데, 원래는 거의 합의가 된 것처럼 얘기를 했는데 막판에 가서 갑자기 우리측이 ‘성의있는 호응조치’를 얘기하면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경단련 방식이 아닌 전범기업들의 직접 참여를 요구하는 바람에 일본 측에서 난색을 표했다.
거의 일본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것처럼 하다가 뜻밖에 우리의 요구를 분명하게 하고 그걸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외교부가 국내의 강한 반대여론을 의식한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장관을 포함해 실무선까지 외교부가 책임을 다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 외교부는 박진 장관이 책임자인데.
■ 박진 장관과 조현동 1차관, 서민정 아태국장이 어쨌든 책임자인데, 정치인으로서 가장 큰 책임을 지는 건 박진 장관이다.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진 장관도 고민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전에 윤병세 장관만 해도 전문 관료이기 때문에 그걸로 끝나는 거지만 박진 장관은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국민여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판 인태전략, “반중전선에 편승, 과도하게 중국을 자극”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오른쪽 흰색 상의)와 코로나 관련 협의를 갖고 있다. 주오사카 대한민국 총영사관은 오사카 주재 여러 나라 공관 중 위상이 높다. [사진 출처 - 오사카 총영사관 홈페이지]
□ 최근 들어서 일본이 북한하고 상당히 첨예한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예전에는 북일 관계 개선도 이슈였다. 최근 기류는 어떤가?
■ 일본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얘기하고 있다. 특히 작년 9월에 있었던 유엔 총회 연설에서 기시다 총리는 ‘조건 없는 북일 대화’를 제의하면서 ‘관계 정상화 용의’가 있다고 얘기했다.
사실은 일본이 진정한 의미에서 북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다기보다는 현재의 대중(對中)전선을 구축하는 데 전력을 투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으로부터 오는 미사일과 같은 안보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발언이나 대화 제스처는 진정성이 있기보다는 하나의 어떤 상황 관리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 아닌가 생각한다.
□ 실제로 일본 내부 분위기는 북한에 대해서 험악한가?
■ 삭막하다. 특히 일본 내에 있는 총련 또는 조선학교에 대한 탄압, 차별은 심하게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도 너무 북일 관계가 나쁘고 또 총련과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 탄압이 심하다 보니까 오히려 “북한에 대한 통로가 막힌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는 아주 작게 들릴 수밖에 없다. 대체로 북한에 대한 강경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 그렇다면 당분간 북일 관계를 크게 염두에 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그렇다. 크게 변수가 될 것 같지는 않다.
□ 한반도에서 지금 미중 패권 경쟁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어가고 있는 과정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달리 한미동맹 쪽으로 많이 치우친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신남방 정책과 달리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을 펴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 그동안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이래 30년 동안 우리나라의 외교는 한편으로는 한미동맹, 서방을 겨냥한 외교와 또 한편으로는 북방정책이라고 하는 주로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좀 더 넓게 본다면 중국도 포함하는 북방외교 두 갈래로 이어져 왔다.
반드시 균형외교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한미동맹의 비중이 더 크고 북방외교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전략적 협력관계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북방외교, 특히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외교는 굉장히 체계화된 접근 방식을 취해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신북방 정책과 신남방 정책을 취해서 한미동맹 위주에서 이제는 아세안이라든지 인도로까지 우리의 외교 범위를 확장했다. 그런데 이번에 윤석열 정부가 작년 12월에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보면 유라시아가 보이지 않는다.
주로 인도‧태평양 쪽으로 치중하게 됐는데 문재인 정부 신남방 정책의 핵심은 이른바 ‘아세안의 관점’, 바로 경제 협력이다. 안보 분야는 아세안 10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입장을 취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경제협력 분야에서 아세안 국가들이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정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보면 주로 해상 교통로의 안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 얘기는 결국은 우리가 말로는 아세안의 관점을 수용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아세안 관점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오히려 일본이 제안하고 미국이 이어받은 인도‧태평양 전략이라고 하는 반중전선에 편승하는 이런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중국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 구체적으로 윤석열 정부 들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된 것 아닌가?
■ 우크라이나 전쟁이 윤석열 정부의 출범 직전에 터졌다. 그러다 보니까 러시아와의 관계는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건 불가피하다고 보는데, 우리가 더 주의해서 봐야 할 건 중국과의 관계이다.
중국의 경우는 지금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작년 10월 한 달 빼고는 계속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반도체 가격 폭락에 의한 거라고 하지만 사실은 반도체 문제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대중 무역 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이것은 어떤 중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최대 무역국가인 중국과의 관계 악화가 한국 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 중국과의 관계가 걱정이다. 그리고 북한은 러시아 편을 들고, 우리는 우크라이나 편을 들고, 간접적인 제3지대에서의 전선이 형성돼 있다.
■ 지금 북한 입장에서 본다면, 그동안에는 북한이 핵‧미사일 문제로 굉장히 고립이 돼 있었다. 특히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중국과 러시아가 동참함으로써 북한의 고립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처럼 북방 삼각과 남방 삼각의 대립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북한으로서는 안보적으로 굉장히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
작년에 있었던 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 결의안이나 의장 비난성명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무산된 바가 있다.
앞으로도 이런 것이 계속될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우리 정부가 그동안에 추구했던 대북 국제공조가 사실상 금이 갔다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북한 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기가 더욱 더 어려워지지 않나 생각한다.
□ 지난해 ‘화성-17’형, 미국 본토까지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도 유엔 안보리의 규탄결의가 안 나왔다. 만약 7차 핵시험을 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나?
■ 차이가 있다면, 원래 NPT(핵무기 비확산조약) 조약에 따르면 위반시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를 하기로 이미 국제법상에 규정이 돼 있다.
일반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됐든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이 됐든 이 자체는 사실 국제법 위반은 아니다. 다만,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초기에는 중국 유엔대사가 “이것은 지역 정세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반대 입장을 취했다가 결국은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하면서 북중 관계가 더욱 악화됐고 이런 과정에서 탄도미사일에 대한 제재에 동의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에 동의하지 않지만 만약에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할 경우는 NPT에 위반되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로서 상당히 난처해질 수도 있다. 아마 이런 부분들 때문에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하면서도 핵실험에 대해서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봐가면서 굉장히 신중하게 결정을 미룬 것 같다.
다만 일부에서 기술적으로만 보면 7차 핵실험이 필요 없다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맞춤형 핵탄두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7차 핵실험의 필요성이 있긴 하다.
남북 대화, “공식, 비공식 대화 채널 확보가 중요”
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는 국제관계와 남북관계 등에 대해 해박하고 뚜렷한 소신을 밝혔다. [사진 - 조천현]
□ 지난 3일 워싱턴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보면, 우리 정부는 7차 핵실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작년부터 한다 한다 했는데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 7차 핵실험의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작년에 북한이 핵실험장을 복구한 것은 어떻게 보면 지난 2018년 6월에 있었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를 미국이 계속 깼기 때문에 북한도 합의를 번복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7차 핵실험 결단 여부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세에 유리한 타이밍을 보는 게 있고 또 하나는 기술적 준비다. 그러니까 핵실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결국은 북한이 다종화하고 경량화, 소형화한 탄도미사일이 실전배치 되기 전에 최종 점검하는 의미가 있다. 그런 준비가 갖춰졌을 때 핵실험을 할 거라고 본다. 이 두 가지가 맞아야 되기 때문에 무조건 올 봄이라든지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다.
□ 작년에 ‘북한 7차 핵실험 임박’으로 ‘장사’를 많이 했지 않나?
■ 그랬다. 작년에는 쏠 거라고 ‘예상’했다기보다는 쏠 것을 ‘기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당시만 해도 윤석열 정부가 초기에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었고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핵 실험하게 되면 국민여론이 그리로 쏠리게 되어 국면전환에 유리하다는 정략적인 판단이 그런 ‘기대’로 이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 국내용 필요성도 있었겠지만 한미일 삼각 구도를 구축하는데 명분으로 썼던 것 같다. 북한이 작년에 실제로 군사행동도 많이 했고.
■ 그렇다. 북한으로서는 굳이 핵 실험까지 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 어찌됐든 북한이 작년에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했고 미국 본토까지 가는 ICBM을 시험발사도 했고, 상황이 바뀌지 않았나?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내세우고 있는데 접점이 없는 것 같다.
■ 내가 볼 때는 현재 비핵화 협상이 중단됐고 재개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가 비핵화 협상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대북 억제력을 구축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대화를 모색하는 두 개의 노력이 병행돼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일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핵무장론이라든지 또는 전술 핵무기의 재배치 이런 부분들은 사실상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미국에서 한국이나 일본의 핵무장론에 대해서 세 가지 옵션을 검토하고 있는데 하나는 증강된 재래식 전력, 두 번째는 저위력의 핵무장, 세 번째가 고위력의 핵무장, 이 세 가지 케이스가 있다.
그런데 현재 북한의 핵능력을 고려했을 때는 미국은 확장 억제력 하에서 한국의 대량보복 능력을 키워서 억제 균형을 이루려고 하는 것 같다. 현 단계에서는 3축 체계의 구축만으로도 북한의 핵 위협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셋 중 ‘증강된 재래식 전력’에 해당하는 건가?
■ 그렇다. 현재 북한의 핵 능력이 ‘저위력의 핵무기’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상태를 방치하게 될 경우 북한이 실제로 ‘고위력의 핵무기’를 개발하고 실전 배치하게 된다면 3축 체계와 같은 증강된 재래식 전력 갖고는 핵억제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저위력의 핵무력을 갖춘 현 단계에서 증강된 재래식 전력으로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되, 북한이 고위력의 핵무기를 개발해 실전 배치하기 이전에 비핵화 협상을 재개해서 이런 상황 악화를 막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대화 재개를 해야 하는데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 쉽지는 않더라도 대화 재개를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작년 11월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보여줬던 미국의 태도도 그렇고 얼마 전에 있었던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외교적 노력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계속 나온 것은 바로 그런 이유라고 생각한다.
□ 문제는 실제로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하는데 지금 흐름으로 봐서는 대북 압박책 위주인데다 북한도 별로 응할 것 같지도 않다. 어떤 조건, 어떤 과정을 거쳐야 외교적 노력이 가능할까?
■ 내가 볼 때는 현재 즉각적으로 대화를 재개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대화 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북한이 우려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말하면 핵 전략자산들의 한반도 배치라든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경우는 실제로 한미일의 북한 핵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의 경우도 비공개로 전환해 한다든지 또 3축 체제에 대해서 ‘킬체인’이라든지 ‘참수작전’ 이런 자극적인 용어들을 회피하고 ‘전략적 타격 체제’라고 해서 대화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해 왔다. 이런 것은 북한 눈치보기라기보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 재개의 필요성에서 나온 불가피한 노력이었다.
그런 면에서 현재 윤석열 정부가 과도하게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들을 자제할 필요가 있고 이런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는 데 중국의 건설적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상당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당장 관건은 한미합동군사연습인 것 같다. 더구나 규모도 더 확대한다고 예고했다. 북한도 상응하는 일을 벌일 것 같고 올 봄의 한반도 위기가 회자되는데 어떻게 보나?
■ 현재 한미군사훈련 자체를 전면 중단하거나 그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실제로 북한에 대한 대북억제력이라고 하는 부분이 한미군사훈련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현재처럼 지나치게 북한을 자극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부분들은 오히려 북한과의 대화 재개의 난관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북한의 반응을 보아가면서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탄력적이라고 하는 것은 일방적인 군사 훈련의 축소라기보다는 북한에 대한 조건부, 다시 말하면 북한이 대화에 응한다든지 이럴 경우 어느 정도 충분히 한미군사훈련에 대해서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이런 메시지를 전달해줘야 북한도 어느 정도 도발적인 자세를 완화시킬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 공식, 비공식 대화 채널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 그러나 실제로 보기에는 공식은 당연히 없고 비공식 채널도 안 보이는 것 같다.
■ 그런 것이 당면한 문제다. 사실은 우리가 전쟁 중에도 비공식 채널은 유지가 돼야 되는데 지금 남북 간의 비공식 채널 자체도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한반도에서의 안보 딜레마는 이렇게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런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우리 정부가 뭔가 남북 간의 대화 채널을 복원하는 데 상당한 힘을 기울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북, ‘신냉전과 다극화’에서 활로 찾으려 할 것
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는 올해 한반도 정세가 상당히 위기리고 진단하고 우리 정부의 각별한 노력을 당부했다. [사진 - 조천현]
□ 북한을 보면 ‘하노이 노딜’ 이후에 독자노선을 가고 있고 국방력을 강화하고 있는 흐름이 뚜렷하다. 북한의 현 입장을 어떻게 보는지?
■ 북한 입장에서 본다면 2018년, 2019년에 있었던 남북 대화 또 북미 대화 노력이 결코 쉽지 않다고 판단할 것 같다. 북한식 표현대로 한다면 미국은 어떤 대화를 해도 북한의 굴복을 요구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하지 진정한 의미의 협상을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일단 핵무기 보유국의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데 초점을 두는 것 같고 지금까지 그렇게 추진해 왔다. 다만 북한으로서는 제재가 계속되는 한 경제회복을 원활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화의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닫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든지 미중 전략경쟁 하에서 북한이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본다. 북한은 오히려 신냉전과 다극화하는 국제정세를 활용해 나름대로 경제 회생의 길을 모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 경제연합’이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장기전의 관점에서 미국하고 대립하면서도 끊임없이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에 대해서는 100% 신뢰하기 어려운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해서 미국과 정면충돌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및 유라시아 경제연합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 앞으로 경제 활로를 모색해 나갈 거라고 본다.
북한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처럼 미국이 주도하는 단일 경제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거기에 유라시아 경제연합이 결합된 하나의 별도의 경제권이 만들어지게 되면 북한으로서는 하나의 이른바 다극화 체제 속에서 안정적인 체제 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할 것 같다.
□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에는 북한도 어쨌든 남한과 미국과 관계를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가 있었다고 본다.
■ 그런 부담이 확 줄어든 거다. 일단 중국, 러시아가 기본이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약간의 경계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아예 (미국과) 정면 대립을 하고 있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 경제연합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얘기한 ‘신냉전과 다극화’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북한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북한으로선 신뢰할 수 없는 한국, 미국, 일본보다 중국, 러시아나 유라시아 경제연합 쪽에서 활로를 찾으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윤석열 정부가 이란 주적 발언과 대만 해협 발언 같은 상당히 외교안보적으로 개념이 부족한 행보들을 거듭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된다고 보나?
■ ‘이란 주적’ 발언은 어떻게 보면 몇 차례 있었던 외교적 해프닝에 불과하다. 국제정치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한 윤 대통령의 무지에서 나온 발언이지 전략적 구도에서 나온 얘기는 아닐 것이다.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전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하는 입장은 사실은 2021년 5월에 있었던 문재인-바이든 정상회담에서 이미 나온 바가 있다. 그리고 2021년 문재인 정부 때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도 되풀이됐고 작년 5월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 또 작년 11월에 있었던 한미일 프놈펜 정상회담에서도 모두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전이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을 다 얘기했다.
문제는 작년 12월에 한국판 인태 전략이 발표됐는데 여기에선 한 발 더 나갔다.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전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하다’는 표현을 넣어 한국의 안보와 직접 연결시켰다. 대만의 평화와 안전이 단순히 우리의 평화와 안전의 외부 환경이 아니라 직접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만약에 대만 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한국이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중요한 시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그렇게 돼서도 안 되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것은, 만약에 중국의 대만 침공이 일어날 경우 아마 한반도에서 제2 전선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북한이 미국과 일본의 전력이 대만 해협에 집중되는 틈을 타서 한반도에서의 어떤 무력 도발을 기도할 가능성과 다른 면으로 본다면 중국이 대만 침공을 위해서 오히려 먼저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하고 여기에 주한미군과 일본자위대의 발목을 잡은 뒤에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대만 해협의 평화 안전이 중요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안보와 직접 연결시켰을 때는 굉장한 우리 안보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은 반드시 시정해야 될 내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면 중국이 거기에 대해서 왜 직접 언급을 하지 않느냐? 중국의 판단으로는 한국이 말은 반중적으로 해도 현실적인 국익을 고려할 때 행동은 말과 일치시키기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미국의 대립은 작년 11월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서 일시 봉합했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 패권 경쟁은 장기전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일종의 휴지기라고 볼 수 있다.
나는 휴지기 때가 한반도에 굉장히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본다. 휴지기를 이용해서 중국이 본격적으로 일본과 한국에 대한 손보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면에서 2023년도가 한중 관계에 굉장히 중요한 시기가 되지 않을까 위험한 시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사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손보려고 마음먹으면 많은 수단이 있을 것 같다.
■ 그동안에는 미국과의 관계가 정리가 안 됐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 대한 조치는 후순위로 밀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번에 정찰 풍선 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다시 미중 관계가 요동을 치고 있지만, 미중 관계가 어느 정도 풀리고 나면 한국과 일본, 특히 좀더 약한 고리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 대해 어떻게든 손댈 가능성이 높다.
□ 만약에 손댄다면 어떤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하나?
■ 아무래도 지금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무역 제재가 있지만 최근에 나타난 것처럼 한국인의 중국 입국을 제한한다든지 이런 조치를 연장을 해서 여러 가지 한중 관계에서 특히 경제적인 조치를 통해서 제한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한국이 칩4(Chip4)에 가입을 해서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에 제동을 걸 경우 거꾸로 중국으로서는 희토류나 이런 부분들에 대한 한국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 특히 한국이 2차전지나 반도체에 필요한 희토류를 상당 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이런 위험성들이 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진입 횟수를 늘린다거나 한중잠정조치수역에서 중국선박의 대규모 진입과 같은 회색지대갈등(Gray Zone Conflict)을 야기해 우리를 괴롭힐 수 있다. 회색지대갈등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단독역량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 버틸 힘도 없는데 우리 정부가 지금 큰소리만 치고 있는 셈인가?
■ 윤석열 정부가 아직은 말의 단계에 그치고 있으니까 당장 행동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다. 중국으로선 아직은 급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미중 관계가 잠정 봉합되고 한국의 반중 태도가 행동으로 나타난다면 중국의 대응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의 태도이기도 하지만 북한이 군사합의 위반이라든지 더 나아가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을 해도 중국이 중재 역할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북한을 두둔한 입장으로 들어설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이 적어도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굉장히 풀기가 어려워진다. 북한에 대한 통로가 다 막혀있는 상태에서 중국의 중재 역할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이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출처 : 통일뉴스 (2023.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