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미래] 시대에 뒤떨어진 스마트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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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미래] 박성원 |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도시의 미래를 상징하는 단어로 스마트 시티(smart city)가 회자하지만, 현재는 물론 미래의 문제까지 고려하면 낡은 개념이다. 시민들이 원하는 도시의 미래상도 아니어서 스마트 시티를 대체하는 새로운 비전이 나와야 할 것 같다.
국토교통부 정의에 따르면 스마트 시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 기술을 활용하여, 시민들의 삶의 질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플랫폼”이다. 여기서 혁신 기술은 주로 정보통신기술을 의미하며 인공지능기술도 포함한다.
스마트 시티의 원류가 유비쿼터스(언제 어디서든 연결되는 도시)에서 왔다지만 그 싹은 일찍이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경제부총리를 역임했던 미래학자 이한빈 선생은 1983년 컴퓨터 통신이라는 말도 낯설 때 도시행정연구회의 연설에서 도시의 미래로 “슬기 도시”를 제안했다. 당시 우리 사회는 다가오는 2000년에 인구 4천만명에서 5천만명으로의 급격한 성장을 걱정했다.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 일자리와 주거시설의 부족, 환경 오염과 범죄의 증가,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 발전이 심화될 우려가 있었다. 이런 미래 문제의 대안으로 이한빈은 중공업 중심에서 탈피해 전자산업과 정보지식산업으로 전환하고 시민들이 컴퓨터를 자유롭게 활용하며 재택근무도 가능한 슬기 도시를 내놓았다. 슬기 도시를 영어로 바꿔도 스마트 시티지만, 지금의 개념으로 봐도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한빈의 혜안은 앞서갔다.
당시 이한빈이 걱정한 미래를 우리는 현실로 맞이했지만, 지금의 미래 문제는 그때와 달라졌다. 인구 증가가 아니라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 정보통신의 연결이 아니라 과잉 연결로 벌어지는 사이버폭력, 피싱, 에스엔에스(사회관계망 서비스) 중독이 걱정된다. 그때는 기후변화를 우려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 지구적 기후위기를 예상한다. 그에 따라 에너지 전환, 탄소배출 감축, 생물다양성 보전에서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류가 공멸할 수 있다.
도시가 오랫동안 발전한 이유는 생존의 기회와 즐거움 때문이다. 원래 흩어져 살던 인류는 모여 사는 도시를 만들어 생존뿐 아니라 놀이의 기회를 넓혔다. 모여 살면서 인류는 더 오래, 더 즐겁게 살게 되었다. 5천년 전 형성된 페루의 고대도시 ‘카랄(Caral) 시티’에서는 피리와 허브가 발견되었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허브를 불에 태우고 피리를 불며 춤추고 놀았던 증거였다.
대한민국 시민은 어떤 도시를 바라고 있을까. 2016년 부산연구원 조사에서 시민들은 도시의 미래에 공원과 녹지공간의 확충을 일자리나 주거시설의 확충만큼이나 많이 요구했다. 산책과 사색, 소규모 공동체의 연대 등에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2018년 세종시가 전국 12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시민들은 “공원에서 가족과 휴식할 때” “차가 없어 아이들과 안심하고 놀았을 때”를 가장 행복했던 도시의 경험으로 꼽았다. 시민들은 도시의 미래에서 ‘걷는 자유’와 ‘녹색 공간’을 바라지, 온갖 기술로 도배된 스마트 시티를 바라는 것 같지 않다.
이런 점에서 도시 전체를 국립공원화하자는 움직임이 주목된다. 영국의 수도 런던은 2019년 ‘런던 내셔널 파크 시티’라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더 푸르른, 더 건강한, 더 야생적인 도시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 비전 선포식에는 보건, 사회복지, 레저, 환경, 에너지를 담당하는 런던시 부시장들이 참여해 서명했다. 2021년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애들레이드시도 국립공원도시를 천명했다. 이들 도시는 “더 놀 수 있는 도시”를 추구하면서 도시 구석구석 사람들이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도록 골목길을 내고 자연환경을 확대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놀수록 위험해지는 우리 사회와 어찌 비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출처: 한겨례 (2022.11.20)